이런 관점으로 '사랑'과 '죽음'이라는 사건을 바라볼 수 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만이 아니라 그와의 관계를 사 랑한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탄생하는 나의 분인을 사랑한다는 것 이다. '나는 당신과 함께 있을 때의 내가 가장 마음에 든다. 그런 나로 살 수 있게 해 주는 당신을 나는 사랑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일이 왜 그토록 고통스러운지도 이해할 수 있다. 그를 잃는다는 것은 그를 통해 생성된 나의 분인까지 잃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의 죽음으로 인해 그 사람과만 가능했던 관 계도 끝난다. 다시는 그를 볼 수 없다는 것은 다시는 그때의 나로 살아갈 수 없다는 뜻이다.' pp.131
언젠가 기타노 다케시는 말했다. "5천명 이 죽었다는 것을 '5천 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이라고 한데 묶어 말하는 것은 모독이다. 그게 아니라 '한 사람이 죽은 사건이 5천 건 일어났다'가 맞다." 이 말과 비슷한 충격을 안긴 것이 히라노 게이치로의 다음 말이었다. "한 사람을 죽이는 행위는 그 사람의 주변, 나아가 그 주변으로 무한히 뻗어가는 분인끼리의 연결을 파 괴하는 짓이다." 왜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가. 누구도 단 한 사람 만 죽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살인은 언제나 연쇄살인이기 때문이 다. 저 말들 덕분에 나는 비로소 '죽음을 세는 법'을 알게 됐다. 죽 음을 셀 줄이는 것, 그것이야말로 애도의 출발이라는 것도. pp.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