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릴케인가. "릴케의 시에는 답이 없다. 인간의 언어로 제기된 가장 아름답고 심오한 질문이 있을 뿐이다." 어디엔가 이렇게 쓴 적이 있는데 이 말도 정확하지는 않다. 답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 기 때문이다. 답이 있기는 하되 그것이 질문만큼 중요하지는 않다 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 적어도 시에서는 그렇다. 위대하다는 시인들의 시를 읽으면서 그들의 답에 놀라본 적이 별로 없다. 그 답은 너무 소박하거나 반대로 너무 거창했다. 그러나 누구도 시인 들만큼 잘 묻기는 어렵다. 나는 그들로부터 질문하는 법을, 그자 세와 열도와 끈기를 배운다. 그것이 시를 읽는 한 가지 이유다. 인 생은 질문하는 만큼만 살아지기 때문이다. pp.87
'아티카의 묘석attischen Stelen, Attic gravestones'을 검색하면 나오는 것은 상대방의 어깨에 조심스럽게 손을 올린 연인들의 모습이다. "거기서는 사랑과 이별이 마치 우 리의 경우와는 다른 소재로 만들어진 듯, 가볍게 두 사람의 어깨 위에 얹혀 있지 않는가." 언젠가 릴케는 문제의 묘석을 실제로 보 았고, 거기 부조된 고대의 연인들(“절제하고 있는 그들")에게서 '절제하는' 사랑의 역설적 깊이를 보았다. 그가 말하는 '절제'란 사랑이 탕진되지 않도록 가장 아름다운 거리를 유지하는 기술일 것이다. pp.89
그러므로 단지 사랑을 하고있 다고 해서 진실로 존재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 천사가 껴안으면 바스러질 뿐인 우리 불완전한 인간들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그를 '살며시 어루만지는' 법 을 배워야 한다. 그것이 인간의 사랑이 취할 수 있는 최상의 자세 일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관계 속에서 인간은 누구도 상대방에 게신이 될 수 없다. 그저 신의 빈자리가 될 수 있을 뿐. pp.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