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보예 지젝은 죽은 신을 위 하여」에서 신의 일방적인 발언을 이렇게 냉소한다. "쩌렁쩌렁 울 리는 신의 말 때문에 욥의 침묵, 욥의 묵묵부답이 더욱 잘 들린 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평결한다. "신은 정의롭지도 불의하지도 않다. 다만 무능할 뿐이다." 그는 『욥기』가 욥의 질문에 대답하는 데 실패했다고, 그러므로 『욥기』로부터 욥의 위대한 질문을 분리 해내야 한다고 말한다. pp.43
인간은 자신의 불행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견디느니 차라리 어떻게든 의미를 찾으려 헤매는 길을 택하기도 한다. 내 아이가 어처구니없 는 확률(우연)의 결과로 죽었다는 사실이 초래하는 숨막히는 허무 를 감당하기보다는 차라리 이 모든 일에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어 떤 거대한 섭리가 존재한다고 믿는 편이 살아 있는 자를 겨우 숨쉬게 할 수 있다면? 신은 그때 비로소 탄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신이 존재하지 않 는다는 것을 강력히 입증하는 증거 앞에서 오히려 신이 발명되고 야마는 역설. 가장 끔찍한 고통을 겪은 인간이 오히려 신 앞에 무 릎을 꿇기를 선택하는 아이러니. 그럴 수밖에 없었던 마음들이 얼 마나 많았을까. pp.43-44
무신론자에게 신 을 받아들이는 일이란 곧 사유와 의지의 패배를 뜻할 뿐이지만, 고 통의 무의미를 견딜 수 없어 신을 발명한 이들을 누가 감히 '패배 한' 사람들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이 신을 발명하기 전에 먼저 인간이 인간을 구원할 생각이 없다면 말이다.pp. 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