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극복한 인생의 상처들이 우리를 더 강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세실리아 로즈 허니컷은 윌러비의 작은 마을에서 엄마, 아빠와 함께 살고 있다. 젊은 시절 남부에서 ‘비데일리아 양파 여왕’이었던 엄마는 아빠를 만나 북부로 이사했고, 기후가 맞지 않는 곳에 똑 떨어진 남부의 꽃잎처럼 과거의 영광을 잊지 못한 채 북부에서 시들어간다. 엄마의 정신병과 아빠의 방치, 친구들의 놀림과 동네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열한 살 씨씨의 하루하루는 불안하고, 숨막히고, 힘겹기만 하다. 그녀에게 위안이 되는 것은 책과 옆집 오델 할머니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작스런 교통 사고로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씨씨는 아빠의 결정으로 남부에 살고 있는 투티 할머니에게 맡겨지게 된다.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 없이, 조지아 서배너에서의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아직 어린 씨씨는 걸어들어갈 수밖에 없다, 이미 결정된 삶 속으로.. 그렇지만 이번에는 다행히도 남부의 따뜻하고 온화한 날씨처럼 온 마음으로 두 팔을 활짝 벌려 그녀를 환대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삶 속으로..
투티 할머니가 등장하는 순간부터 조금 뻔한 따뜻한 이야기가 될 거라는 걸 예상했지만, 반전 없이 끝까지 그 조금 뻔한 따뜻한 이야기로 끝나기를 바라기도 했던 이상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딱 그렇게 따뜻한 이야기로 끝나서 다행이었다. 마지막 장면, 조잘조잘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딕시와 팔짱을 끼고 학교로 걸어간 씨씨는 이제 자신을 조건 없이 환대해주던 노부인들의 세상에서 다시 한 발 벗어나 또래들의 세상 속으로 뛰어들 것이다. 그곳에서는 아마 무조건적인 환대를 경험하지는 못할 것이고, 이런 저런 갈등과 상처를 겪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그녀에게는 이제 그런 순간들의 길목마다 지지해 주고 꼭 안아줄 사람들이 있고, 모든 것이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 위한 경험으로 작용할 것임을 믿는다.
“우리가 극복한 인생의 상처들이 우리를 더 강하고 아름답게 만든다”고 말했던 씨씨의 엄마는 비록 스스로는 극복해내지 못하고 오히려 씨씨가 극복해야 할 상처 중 하나가 되고 말았지만, 그녀의 말대로 씨씨는 그런 이유로 더 강하고 아름다워질 것임을 믿는다.
보이지 않아도 주변에 씨씨 같은 아이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대부분의 씨씨들에게는 투티 할머니가 존재하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안다. 그동안은 사정을 몰라서 나를 구하러 오지 못하고 있었을 뿐인, 먼 곳에 사는 맘씨 좋은 부자 할머니 같은 건 이렇게 소설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유니콘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주변에는, 투티 할머니가 등장하기 전에 씨씨를 든든하게 받치고 있었던 ‘오델’ 할머니 같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안다. 그런 사람이 필요한 곳에서 마음만 먹으면 “내”가 그런 사람 정도는 되어줄 수도 있다는 것도.. 나는 부자가 아니어서 투티 할머니가 될 수도 없을 것이고, 요리를 못하니 올레타가 될 수도 없겠지만, 함께 꽃을 가꾸고 세상에 너 ‘혼자뿐인 건 아니’라고 말해 줄 오델 할머니의 역할은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