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방영되고 있는 '알쓸인잡'의 마스터(?) 중에 천문학자로 나오는 심채경 박사가 있다. 이 프로그램에 등장하기 전에도 이미 여러차례 방송이나 개인미디어, 강연 등에 나온 적이 있어서 아는 사람들도 많은 듯했다. 나도 이름 정도만 알고 있었지 자세한 사항들은 잘 몰랐다.
그가 쓴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는 그의 삶과 일상, 그리고 천문학에 대한 애정을 담은 에세이다. 성격이 약간은 애매한 에세이이긴 한데 이는 개인적인 이야기와 천문학 이야기가 함께 담겨 있기 때문이다. 1부와 2부는 주로 자신의 삶과 개인적인 경험들을, 3부와 4부는 천문학의 내용들이 나오지만 여기에도 자신이 생각과 경험을 함께 담았다.
그는 이 책에서 솔직하게 얘기한다. 자신이 천문학을 전공하게 된 것, 행성을 연구하게 된 것, 토성의 위성인 타이탄으로 학위 논문을 쓰고, 달 연구를 하게 된 것도 다 어떤 목표가 있어서라기 보다는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다고. 하지만 그가 정말 우주를 사랑했고, 행성과 위성들을 사랑했다는 것은 충분히 느껴졌다. 그리고 우리나라 과학계에서 연구자로 살아가는 현실, 특히 비주류 분야에서, 여성으로서, 엄마로서의 어려움도 토로하고 있다.
물론 우주가 아닌 다른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었더라도 그 분야를 계속 공부했을 거라고 하니 그 선택이 꼭 우주가 아니었더라도 아마 어디선가는 두각을 나타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나도 대학원에서 석사, 박사 과정을 지나왔고 지금도 연구를 하고 있기에 공감되고 이해가 되는 내용이 많았다. 이공계 대학원 과정은 비슷비슷하지만 특히나 마이너한 분야는 그 나름의 독특함이 있다.
특히나 박사학위를 '운전면허'에 비유한 것에 공감. 나도 박사학위를 그냥 '자격증' 정도로 생각한다는 얘기를 자주 했기 때문이다. 박사라는 타이틀이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무언가를 독자적으로 하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라는 것을. '척척박사'라는 말은 있어도 '척척석사'라는 말은 농담에서나 존재하는 것이라서. 물론 박사라고 해도 자기가 전공한 분야 중에서도 극히 일부분만을 남보더 조금 더 알고 있을 따름이지만.
생각난 김에 그의 석사학위 논문과 박사학위 논문을 훑어 보았다. 둘 다 타이탄의 대기를 분광학으로 분석한 내용인데 세세한 내용까지는 이해할 필요가 없기에 대략 어떤식으로 전개했는지를 보았다.
특이한 것은 박사학위 논문은 국문으로 작성했다는 것이다. 이공계 학위논문은 대체로 영어로 작성한다. 그게 더 쉽기 때문이다. 용어를 사용하는데도 불편함이 없고, 기존에 저널에 발표했던 논문들을 모아서 쓰는 경우가 많아 손이 덜 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굳이 기존에 영문으로 작성했던 것을 우리말로 번역했다. 뒷부분에는 영문-국문 용어집까지 수록했다. 그 번역 과정에서 천문학이나 물리학 및 관련된 용어집들을 참고했고, 그러고도 없는 단어들은 만들어냈다. 이는 후배들을 위한 것이기도 했고, 국내 천문학계를 위한 시도라고도 했다. 그러한 내용은 박사학위논문의 '알리는 글'과 이 책에서도 나온다.
여기에서 그의 생각과 고집이 느껴졌다. 아마 대학원측이나 지도교수와 마찰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대학원 시스템 내에서 자신의 소신을 관철시키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주로 분광학으로 분석하는 연구를 많이 했는데 그러다보니 천체를 직접 관측하기보다는 관측된 데이터를 분석하는 것이 주업무였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을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라고 했을 것이다.
국내에서 유일한 타이탄 연구자였던 그는 그 연구를 지속하는 것에 회의를 느끼고 달 연구로 방향을 전환했는데, 달에 대한 백그라운드는 기존의 전공자들에 비해 부족했지만 그동안 해오던 방법론을 적용하여 소위 대박이 난 연구 결과를 발표하게 된다.
저자가 그렇게 알려진 계기는 <네이처>에서 '미래의 달 과학을 이끌 과학자'로 선정하여 인터뷰 한 내용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이야기도 있는데 그것도 우연이었고, 운이 좋았던 걸로 서술되어 있다.
하지만 운이 좋았다고 해도 그것도 노력의 결과라는 것도 안다. 아무튼 그렇게 언론에 알려지면서 미디어와 강연에 많이 나오게 됐고, 지금은 천문학의 대중화에 기여하게 되었다. 그가 원하든 원치 않았든. 그러나 그는 그러한 것도 과학자의 소명으로 생각한다. 그러한 인지도 때문에 아마 이 책도 쓰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이 책이 나온 것은 2021년 초이긴 하지만 알쓸인잡으로 인해 더 인기를 얻게 되지 않았을까 싶고, 이 점을 문학동네측에서도 알고 있기에 열심히 홍보를 하고 있는 듯하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희망을 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 사람의 박사, 연구자가 만들어지고 성장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어쩌면 이 책은 아직 진행중인 그의 성장 스토리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우주에 대한 애정은 진심이다. 그리고 천문학에 대한 관심을 요청하고 있다. 천문학자가 아니라도 우주를 사랑할 수 있고, 우주탐사에 힘을 보낼 수 있으니까.
좀 더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책이 나온다면 그 때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잠깐 반짝하고 사라진 초신성이 아닌, 계속 빛을 발하는 별자리들처럼. 그러한 별자리가 되어 천문학 꿈나무들을 이끌어 줄 수 있을 것이다.
p.s. 그런데 책의 제목에 대해선 의문이 든다. 그렇게 제목을 지은 이유가 무엇일까? 그가 천문학자인 것은 맞다. 하지만 그가 부정한 것은 '별'일까 '보는 것'일까?
그는 행성과 위성 전공이다. 그러므로 다른 천체 (우주 그 자체나 말 그대로 별)를 다루지 않는다. 또한 직접 관측하지 않고 (보는 것 뿐만 아니라 측정하는 것) 주로 있는 데이터를 분석하는 일을 하기에 아마 둘 다 부정한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는 모든 천문학자가 '별을 보지 않는다'라고 오해하게 만들 여지도 있어 보인다. 그러므로 제목을 이렇게 수정해야 하지 않을까? "어떤 천문학자는 천체를 관측하지 않기도 한다" 라고...
그러면서도 그는 농담처럼 말한다. 자신은 '별 볼 일 없는 천문학자'라고. 이과적 농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