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기적이란 없다. 그러나 우연은 많다. 아니 세상의 중요 한 일은 공교롭게도 모두 우연이 해결한다. 다행인 것은 우연 중 에는 나쁜 우연이 더 많지만 간혹 좋은 우연도 있다는 것이다. 구 부러진 고개 저편에서 거짓말처럼 헤드라이트의 불빛이 나타났을 때 나는 이모와 나에게 좋은 우연이 오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pp.414
보여지는 나가 말한다. 공손하 게 인사를 해. 침착하게 바라보는 나가 말한다. 반가워하지 마. 아버지라고? 농담이야. 60년대엔 나에게 아버지가 없었지. 그러 니 이건 새로운 농담이 틀림없어. 70년대식 농담인 거야. 시대라 는 구획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건 어쩔 수 없이 인정하더라도 맙소사, 아버지라니, 70년대엔 내게 아버지가 있다니, 이건 대단 한 농담이다. pp.423
눈이 계속 쏟아지고 있었다. 크리스마스카드를 만들 때 나도 이 런 눈을 만들어본 적이 있다. 붓에 흰 물감을 듬뿍 적셔서 검은 켄 트지에 마구 뿌려대는 것이다. 그러면 검은 밤 위로 흰 눈이 쏟아 지는데 눈이 너무 많이 쏟아지니 시야가 흐릴 것이므로 당연히 다 른 풍경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지금 나도 시야가 흐렸다. pp.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