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야 나는 삶의 경고를 깨달았다.
경악한 나는 하모니카를 불고 있는 남자 쪽으로 마구 달려가보 았다. 가까이 가서 보니 더욱 모든 것이 명백했다. 그날 하모니카 를 불던 사람도 이 사람이었다. 허석이 아니었다. 하모니카와 염 소의 실루엣은 허석의 것이 아니라 바로 이 낯선 남자의 것이었 다. 내 사랑이 이 이미지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나는 마땅히 허석 이 아닌 이 더러운 낯빛의 구부정한 아저씨를 사랑했어야 하는 거 였다. pp.402
집 에 가까이 와서야 내가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삶에게 조롱당 한 것이 분해서만은 아니었다. 우는 나를 보면서 나는 아직 내게 사랑에 대한 환상이 남아 있었음을 알았으며 내 몸속에 물기로 남 아 있는 그 환상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내어 배설시켜버리기 위 해서 울 수 있는 한 실컷 울었다. pp.402
삶도 그런 것이다. 어이없고 하찮은 우연이 삶을 이끌어간다. 그러니 뜻을 캐내려고 애쓰지 마라. 삶은 농담인 것이다. pp.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