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기로 나는 더이상 성숙할 게 없었다.
어느 날 나는 지나간 일기장에서 '절대 믿어서는 안 되는 것들 이라는 제목의 긴 목록을 발견했다. 무엇을 믿고 무엇을 믿지 않 는다 말인가. 이 세상 모든 것은 다면체로서 언제나 흘러가고 또 변하고 있는데 무엇 때문에 사람의 삶 속에 불변의 의미가 있다고 믿을 것이며 또 그 믿음을 당연하고도 어이없게 배반당함으로써 스스로 상처를 입을 것인가. 무엇인가를 믿지 않기로 마음먹으며 그 일기를 쓸 때까지만 해도 나는 삶을 꽤 심각한 것이라고 여겼 던 모양이다.
나는 그 목록을 다 지워버렸다.
이제 성숙한 나는 삶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또 어린애 의 책무인 '성숙하는 일'을 이미 끝마쳐버렸으므로 할일이 없어진 나는 내게 남아 있는 어린애로서의 삶이 지루하지나 않을까 걱정 이다. pp.398-3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