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째가 되자 아저씨가 영영 자기를 찾으러 오지 않으면 어쩌 나 하는 생각마저 들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자 자기 자신이 아저 씨가 데리러 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것처럼 생각되었고 그것을 의식한 순간부터 실제로도 아저씨를 기다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날 저녁 아저씨가 친정집 삽짝으로 들어서자 아줌마의 마음속 에 생겨났던 반가움은 바로 그런 풍화 과정을 거쳐 생겨났던 모양 이다. 새 삶에 대한 아줌마의 용기는 풍화작용으로 이미 모서리가 다 깎여서 자갈돌처럼 하찮게 발밑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pp.268
그렇게 열심히 살아가건만 아줌마는 자기 인생에 주인 행세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주어진 인생에 충실할 뿐 제 인생을 스스로 결정하는 일은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어른들은 모험심이 부족하다. 진정한 자기의 삶이 무 엇인지 알아내고 찾아보려 하기보다는 그냥 지금의 삶을 벗어날 수 없는 자기의 삶이라고 믿고 견디는 쪽을 택한다. 특히 여자의 경우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배후에 는 '팔자소관'이라는 체념관이 강하게 작용한다. 불합리함에도 불 구하고 그 체념은 여자의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데 결정적인 영향 을 끼친다. 우연히 닥쳐온 불행을 떨쳐내지 않고 받아들이도록 만 듦으로써 더 많은 불행을 번식시키기 때문이다. pp.2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