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 내 마음속에 들어차고 있는 것은 명백한 슬픔이다. 그러 나나는 자아 속에서 천천히 나를 분리시키고 있다. 나는 두 개로 나누어진다. 슬픔을 느끼는 나와 그것을 바라보는 나. 극기 훈련 이 시작된다. 바라보는 나는 슬픔을 느끼는 나를 일부러 뚫어져라 오랫동안 쳐다본다. 찬물을 조금씩 끼얹다보면 얼마 안 가 물이 차갑다는 걸 모르게 된다. 그러면 양동이째 끼얹어도 차갑지 않 다. 슬픔을 느끼자, 그리고 그것을 똑똑히 집요하게 바라보자. pp.206
그러나 내게 있어 무용 대회는 이미 닫혀진 장면이다. 내 머릿 속에는 대회에 오겠다는 약속을 어긴 허석뿐이다. 배신감과 슬픔 이 나를 상처 주지 못하게 하려고 아까부터 나는 극기 훈련을 하 고 있다. 허석과 이모가 손을 잡고 약수터에 올라가는 따위의 상 상을 열 번도 더 했을 것이다. 미리 그런 상상을 통해 스스로 상처 를 내놓으면 단련이 되어서 실제로 닥쳐오는 상처는 작게 느껴질 것이기 때문이다. pp.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