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일 때는 어른들이 물어다주는 주제와 소재에 의존하면서 대학원생도 과연 연구자라고 할 수 있을까 자문했다. 그땐 자신이 없었지 만 대학원생들과 함께 일해본 경험이 쌓인 지금은 '그렇다'는 걸 안다. (전자책 기준 98%)
과학자가 하는 일 중에 내가 아직 잘 모르는 것이 또하나 있다. 과학자도 에세이를 쓰는가 하는 것이다. 책을 쓰는 과학자도 있지만 쓰지 않는 사람이 더 많다. 책을 쓰더 라도 대개는 전문적 내용을 쉽게 풀어주는 책이나 대학의 교재를 집필한다. (전자책 기준 98%)
초보 연구자의 고군분투기를 쓰기에는 허구한 날 연구실 모니터 앞에 앉아 있 는 나의 삶이 지나치게 단조롭다. 나는 좀처럼 실험실에도 들어가지 않고, 천체 관측을 위해 오지의 천문대로 떠나지도 않으며, 남극이나 우주에도 가지 않으니 말이다. 그래 서 처음에는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 '대체 어떤 책을 쓴다는 거야?' 원고를 쓰는 데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그 질문을 오래도록 품고 있다가 문득 정신을 차렸다. 책장 에 꽂힌 김중혁 작가의 책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뭐라도 되겠지.' (전자책 기준 98%)
요즘 세상에 과학자가 어디 있는지에 대한 답은 아직도 구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질 문을 다시 말하면, 요즘 세상에 과학자는 어디에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전자책 기준 98%)
책을 완성하기까지 꼬박 열 번의 계절이 지나갔다. 계절이 멀어지고 또다시 돌아오 는 시간 중 대부분은 글을 쓰는 게 아니라 나는 누구이며 이 책은 어떤 책인가, 이 책이 '뭐라도 되었을 무렵에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데 소모되었 다. 그렇게 무척 쓸모없었고 대단히 중요했던 열 계절을 기꺼이 맞이한 끝에 이렇게 이 책의 마지막 마침표를 찍는다. 이 한 권의 책에는 작은 구두점이지만, 어느 별 볼 일 없 는 천문학자에게는 또하나의 우주가 시작되는 거대한 도약점이다. (전자책 기준 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