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상 달을 연구하려고 하니 파일만 열어볼 줄 알았지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이미 반세기 전에 달에 탐사선을 보냈던 미국의 과학자들에게 달은 밤하늘에 떠 있는 천체 가 아닌 '지질학적 대상'인 지 오래다. 어디에 동굴이 있는지, 과거 용암이 흘렀던 구불 구불한 계곡 모양의 흔적이 어떻게 생겼는지, 크레이터(행성 표면의 움푹 파인 지형) 내 벽의 경사가 급한 곳에서 흙이 무너져 내린 흔적이 어떠한지 등을 아주 자세히 들여다 보는 것이다. 나는 그런 연구 내용을 단번에 흡수할 수 있는 배경지식이 없었다. 숲을 보지 못한 채 밀림 속에 뚝 떨어져 눈앞의 넝쿨만 보고 있는 셈이었다. 그래서 우선 달 표면의 전반적인 성질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전자책 기준 50%)
달 표면의 흙을 노화시키는 원인에는 태양풍 입 자 말고도 몇 가지가 더 있는데, 어떤 입자의 영향력이 얼마나 더 강한지 하는 것이 당 시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동·서벽 분석 결과는 태양풍 입자와 지구 자기장의 상호작용만 고려한 모델로도 설명할 수 있었다. 태양풍 외의 다른 입자들의 영향력은 미미하다는 것이 심증만 있는 상태였는데, 처음으로 물증을 제시하게 된 것 이다. (전자책 기준 51%)
「네이처」나 「사이언스」에 논문이 실렸다면 여기저기서 강연을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을 터였다. 어쩌면 신문에 기사가 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계약직 신분인 내가 매년 새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대신 정규직 자리를 얻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었다. 어느 기관이나 「네이처」 「사이언스」에 논문 쓰는 연구자를 데려가고 싶어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나만 빼고 모두 탄탄한 정규직이었던 공저자들은 무척 안타까워해주었다. (전자책 기준 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