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토리가 있는 장편소설을 좋아한다. 그나마 SF 중단편 소설은 소재나 발상이 참신하기에 그런 측면에서 흥미롭게 읽곤 했지만, SF가 아닌 일반 중단편 소설, 특히 단편소설은, 뭐지? 그래서? 이게 끝?, 이런 느낌을 받곤 해서 거의 읽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소설집을 읽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단편소설은 이런 스타일인 거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토리가 아닌, 사건이 아닌, '감정'을 다루고 그 감정을 공감하거나 느껴보거나 유추해보거나.. 물론 모든 단편소설이 이런 건 아니겠지만, 장편소설과 다른 단편소설을 감상하는 법, 매력을 조금이나마 알게 된 거 같다.
그냥 쭉~ 한번에 읽었다면 이전처럼, 뭐야?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하고는, 단편은 역시 내 취향이 아니야, 라고 책을 덮었을 수도 있는데
하루에 1~2편씩, 독파의 가이드와 미션에 따라 읽으니 단편소설의, 레이먼드 카버 소설의 매력을 찾을 수 있었다.
이 책의 번역자이기도 한 소설가 정영수는, 레이먼드 카버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특징이 끝에서 이야기가 다시 시작한다는 데 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염두해두고 읽으니 정말 그랬다. (아마 이런 이야기를 알고 있지 않았으면, 그런 부분을 나는 '왜 이렇게 끝나는 거야?'라고 생각했을 거다.)
두려움을 느낀 1박의 휴가(?)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갈 생각과 준비를 하고(소설 [오두막]),
신혼여행으로 함께 떠난 크루즈에서 부인(?) 리틀 주디스가 죽은 후 다시 출발할 준비를 하고(소설 [해리의죽음]),
함께 여자친구의 별장으로 가던 고속도로의 휴게소에서 난데없이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휴게소를 걸어 나오고(소설 [꿩])...
모호하지만, 거창하지 않은 그냥 일상을, 다시 시작하며 이야기가 끝이 난다.
이런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까지는 아직 음미하지 못하지만, 묘한 매력으로 남았다.
단편소설은 내 취향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예상과 다르게 재미있게, 인상깊게 읽었다. 단편소설의, 레이먼드 카버 소설의 매력을 조금이나마 엿본 거 같다. 다음엔 레이머드 카버의 시집을 한번 읽어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