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p. 거의 매일 기차역으로 나갔어. 혹시 네가 기차를 타고 올까봐. 한번은 역에서 얼굴 전체에 화상을 입은 소녀병사를 보고는······ 그대로 숨이 멎는 줄 알았지 뭐니. 넌 줄 알고. 그때부터 그 아이를 위해서도 기도했단다.
83p. 남들에겐 평범한 것들을 나는 새로 배워야 했어. 평범한 보통의 삶을 기억해내야 했어. 정상적인 삶을! 누구랑 그 어려움을 나눴냐고? 힘들 때마다 옆집 여자에게 달려가고······ 엄마에게 달려가고, 그랬지······
또 무슨 일이 있었나······ 글쎄······ 전쟁이 몇 년 동안 있었지? 4년. 그래, 참 길기도 했네······ 그런데 그 4년 동안 꽃이고 새고 전혀 본 기억이 없어. 당연히 꽃도 피고 새도 울었을 텐데. 그래, 그래······ 참 이상한 일이지? 그런데 정말 전쟁영화에 색이 있을 수 있을까? 전쟁은 모든 게 검은색이야. 오로지 피만 다를 뿐, 피만 붉은색이지······
84-85p. 하지만 거기서 살아 돌아간다 해도 마음이 병들 것 같았어. 지금은 '차라리 다리나 팔이 다쳤더라면, 차라리 몸이 아팠더라면'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렇지 않아서인지 마음이······ 너무 아파. 우리는 너무 이른 나이에 전쟁터로 갔어. 아직 어린애나 다름없었는데. 얼마나 어렸으면 전쟁중에 키가 다 자랐을까. 집에 돌아왔을 때 엄마가 내 키를 재보았는데······ 그동안 10센티미터나 키가 컸더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