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8p. 여자들이 이야기할 때, 그들의 이야기에는 우리가 들어서 익숙한 내용, 그러니까 어떤 이들이 얼마나 영웅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죽이고 승리를 거뒀는지, 아니면 어떻게 패배했는지, 어떤 기술들이 사용됐고 어떤 장군이 활약했는지 따위의 내용은 아예 없거나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 다만 사람들, 때론 비인간적인 짓을 저지르고 때론 지극히 인간적인 사람들만이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땅도 새도 나무도 고통을 당한다. 이 땅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모든 존재가 고통스러워한다. 이들은 말도 없이 더 큰 고통을 겪는다.
23-24p. 도스토옙스키가 던진 물음. '사람은 자신 안에 또다른 자신을 몇 명이나 가지고 있을까' 그리고 그 다른 자신을 어떻게 지켜낼까?'이 물음을 이제 나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 (...) 이제 나는 그곳에서 돌아온 이들의 고독을 이해한다. 다른 별에서 왔거나 저세상에서 온 것 같은 그 외로움을. 이들은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세상을 알고 있으며, 그 세상은 죽음에 가까이 다가가야만 알 수 있는 세상이다. 그 세상의 뭔가를 말로 표현하고 전달하려 시도할 때 이들은 죽을 것 같은 고통을 느낀다.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들은 이야기하려 하고, 다른 이들은 이해하려 하지만, 모두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
26p. 나는 우리를 둘러싼 외부의 현실만이 아니라 우리 내면의 현실에도 관심이 있다. 사건 그 자체보다 사건 속 감정이 더 흥미롭다. 이렇게 말해두자. 사건의 영혼이라고. 감정이야말로 나에겐 현실이다.
27p. "엄마, 전쟁이 뭐예요?" 아, 어떻게 대답하나······ 나는 우리 아이가 사랑으로 이 세상과 만나기를 바라며, 함부로 꽃을 꺾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무당벌레를 밟아 죽이거나 잠자리의 날개를 잡아 뜯는 건 잔인한 짓이라고. 그러면서 어떻게 이 아이에게 전쟁을 설명한단 말인가? 어떻게 죽음을 설명할 수 있을까? '거기선 왜 사람들을 죽이냐'는 물음에 어떻게 대답해줘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