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피하기 위해 자주 책을 들었다. 어릴 때는 무시무시하게 큰 입을 벌린 그림자들이 나를 잡아먹지 못하도록 책 속에 코를 묻었고, 커서는 자잘한 고민과 생활고에서 잠시 놓여나려고 책을 들었다. 책은 잠시 그 세계로 몰입한 순간만큼은 현실에서 나를 떼어놓았다. 내가 현실에서 벗어나려 애쓴 게 아니라, 책이 애썼다. 책이 가진(혹은 이끌어내는) 능동성이 내 피동적 웅크림을 토닥였다. 숲을 베어 작은 종이 묶음으로 만든 책은 아이러니하게도 내게서 다시 숲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