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하튼 이번에 눈이 내렸을 때는 나도 뭔가 다르다고 느꼈다. 어딘지 모르게 아름다웠다. 매일 일상에서 바랄 법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일단 아름다움이 넘치도록 많을 때에라야 음미할 수 있는 그런 아름다움. p.23
머라이어는 의심이나 확신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언제나 만사가 뜻대로 되었겠지. 자신뿐만 아니라 고릿적부터 알아온 모든 사람들이 다 그랬을 거야. 난 그렇게 생각했다. 의심을 가질 필요가 없으므로 확신을 가져야 할 필요도 없었다. 그녀에게는 늘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나니까. 일어났으면 하는 일이 일어나니까. p.26.
그날 아침 일찍 머라이어는 내가 있는 객실로 와서 지금 기차가 막 갈아엎은 밭 사이를 달리고 있다고,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풍경이라고 말했다. 그녀가 객실의 블라인드를 올리자 갈아엎은 밭이 끝도 없이 펼쳐졌다. 그 광경에 난 매서운 말투로 대꾸했다. "저 일을 내가 안 해도 돼서 정말 다행이네요." 그녀가 내 말뜻을 알아들었을지는 모르겠다. 그 한마디에 아주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으니까. p.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