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신작 <오, 윌리엄!>은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의 속편이며, 루시의 전 남편이었던 윌리엄과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전작에서 윌리엄은 조연처럼 잠깐씩만 등장한 바 있다.
이 책의 제목이 <오, 윌리엄!>이듯 윌리엄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만 루시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된다. 이는 결국 이 작품이 윌리엄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루시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걸 보여준다.
루시의 이야기는 전작에서 상세하게 나와 있었기 때문에 그 작품을 먼저 읽은 것이 <오, 윌리엄!>의 이해에도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전작을 읽기 않아도 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별 어려움은 없다. 군데군데에서 주석처럼 루시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작과 이 작품간의 시간차는 꽤 크다. 전작이 루시의 30대나 40대(?)의 이야기였다면, 이 작품은 윌리엄이 60대 후반, 70대가 되었을 때의 이야기이니 (윌리엄과 루시의 나이차가 얼마였더라, 본문에 나왔던 것 같기도 한데 정확히 기억이 안난다) 거진 30년 이상의 시간이 지난 시점이다. 작가는 왜 그 시기를 대상으로 삼았을까?
그러한 시간차가 있었지만 두 사람의 내면은 크게 바뀐 것 같지는 않았다. 이혼 후 루시와 윌리엄은 각각의 삶을 살았다. 루시는 데이비드와 재혼을 했고, 작가로서도 성공했다. 윌리엄도 대학교수로, 연구자로의 인생을 살며, 두 번의 결혼을 더 했다.
윌리엄의 아내들이었던 루시, 조앤, 에스텔은 모두 그를 버리고 떠났다. 루시는 에스텔이 그를 버리고 떠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것은 그녀가 느낀 것과도 동일했을 것이기에.
이 책은 윌리엄의 내면속 두려움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는 수시로 악몽을 꾼다. 그 악몽의 근원은 아무래도 아버지 때문인 것 같다. 나치 독일군이었고 포로생활을 했던 아버지, 그리고 그 실상을 알게 된 이후 그것이 트라우마처럼 남아 그를 괴롭혔다.
루시는 그런 윌리엄을 걱정했지만 진심이었을까? 루시는 윌리엄과 함께 사는 동안 표면적으로는 행복했지만 그의 내면까지 들어갈 수는 없었다. 그를 감당하기에 루시는 본인의 삶 자체가 버거웠기 때문이다. 결국 루시는 떠나기로 '선택'했었다.
루시와 윌리엄은 이혼 이후에도 계속 친구처럼 지냈고, 각자 배우자가 있음에도 아이들 때문에 종종 만남을 갖기도 했다. 심지어 에스텔의 파티에도 참석하곤 했다. 내키지 않는 일이었겠지만. 그리고 그 파티에서 에스텔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 때는 몰랐겠지만, 그것이 나중에 에스텔이 윌리엄을 떠난다는 암시였을 수도 있다.
이야기는 윌리엄의 숨겨진 가정사로 넘어간다. 윌리엄의 가정사를 찾아가면서 그의 아버지의 과거와 어머니의 과거도 알게 되고 캐서린이 버린 딸, 즉 이부누나의 이야기도 나온다. 그는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그가 평생 믿었던 것들이 흔들렸다. 악몽보다 더 끔찍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충격이 너무 커서였을까, 그는 달라졌고 권위를 버렸다. 아니, 권위를 버렸다기 보다는 또 다른 권위로 바뀐 것이다.
작품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그 내용은 마치 로드무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두 사람의 갈등은 지속된다. 애초에 루시가 윌리엄을 왜 따라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도 옛정 때문일까. 그러한 가운데서 루시도 비로소 느끼게 된다. 그가 윌리엄에게서 안정감을 느낄 수는 있었지만 위안은 느낄 수 없었던 것을. 반면 데이비드는 그러한 위안을 주었던 사람인 것을.
루시가 더 원했던 것은 안정보다는 위안이었다. 그래서 데이비드가 죽은 후에 데이비드를 더 그리워했을 것이다.
루시는 가정형편과 부모님의 무관심, 냉대로 인해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형성하지 못했고 경험해본 것이 거의 없었다. 이로 인해 보편적인 경험에 대해서도 무지하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고 있었고,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것들이 거의 없었기에 그러한 공동체에서 소외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로 인해 자신이 그 안에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를 인지하지조차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투명인간이라고 표현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에선 루시도 깨닫는다. 자신도 더 이상 헨젤을 따라다니는 그레텔이 아니고 그녀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음을. 그리고 캐서린, 윌리엄,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이들에 대한 찬사로 마무리한다. 우리 모두, 각자가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이 작품은 마치 <사랑과 전쟁>과 같은 느낌도 들지만 그렇다고 자극적이지도 않다. 오히려 그런 요소들을 애초에 제거했기 때문인지 (이미 이혼한 사이, 70대의 나이에 접어드는 시점 등) 담담하게 흘러간다.
그런데 그러한 담담함이 더 현실적으로 와닿았다. 비록, 각각의 상황 (불륜이라든가 미국식 사고방식 등)은 다소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이 중년의 성장일기라면, <오, 윌리엄!>은 장년, 노년의 성장일기라고 할 수 있을까? 인간은 평생동안 성장해 나가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