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과 철학은 서로 잘 어울린다. 프랑스 계몽주의의 총아였던 볼테르는 "우리는 반드시 자신만의 정원을 가꾸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17세기 영국의 작가이자 정원사였던 존 에벌린 역시 이에 동의하며 "정원의 공기와 분위기"는 "철학적 열정"에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전자책 기준 35%)
정원은 관리가 필요하다. 우리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뒷마당에서 빈둥거리는 사람이 정원사가 아니듯, 생각한다고 다 철학자인 것은 아니다. 정원일과 철학은 둘 다 어린아이의 관대한 즐거움이 수반된 어른의 절제된 헌신을 필요로 한다.
두 가지 일 모두 소로가 말한 야생의 기미와 약간의 미스터리는 유지하되 동시에 혼란 속에서 질서를 창조해내려는(질서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다) 시도다. 정원사는 자연과 협력한다. 볼테르의 말처럼, 자연을 보기 좋게 장식한다. 정원사는 식물을 심고 삽으로 흙을 파내고 잡초를 뽑으며 자연을 돕지만, 결국 정원의 운명은 정원사에게 달린 것이다. (전자책 기준 35%)
에피쿠로스가 비교적 먼 곳에 있는, 벽으로 둘러싸인 정원을 선택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스토아학파를 포함한 다른 철학 학파와 철저하게 결별한 에피쿠로스는 추종자 들에게 "사업과 정치의 감옥을 피하라고 촉구했다. 에피쿠로스는 정치적 유대가 자족의 가능성을 낮춰 결국 행복을 외부에 위탁하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에피쿠로스의 모토는 라테 비오사스Lathe Biosas, 즉 '숨어 사는 삶'이었다. 세상에서 물러난 사람들은 늘 의심받는다. 우리는 은둔자에게서 위협을 느끼는 만큼 그를 조롱한다. (전자책 기준 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