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현재, 서른두 살의 버네사 와이는 호텔 안내 데스크에서 일한다. 종일 고객들을 상대하는 일은 진이 빠지고, 퇴근하고 나면 술이나 마리화나에 취해 잠드는 게 일상이다. 2000년 과거, 열다섯의 버네사는 개학을 맞아 사립학교 기숙사로 가는 중이다. 유일한 취미이자 위안은 글쓰기였고, 우연히 문학 교사 제이컵 스트레인이 운영하는 문예창작 클럽에 참여하게 된다. 그리고 버네사는 스트레인과 점점 가까워졌고, 결국 성적인 관계를 맺기에 이른다. 버네사의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진행되는 이 작품은, 무려 십여 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스트레인과의 일이 사랑이라고 믿는 버네사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어느 날 SNS에 스트레인을 성적 학대 혐의로 고발하는 졸업생의 글이 올라와서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되지만, 스트레인은 혐의를 부인하고 버네사는 그의 말을 믿는다. 그의 결백을 믿지 않는다면, 자신의 삶 전체를 부정해야 했으니 말이다. 버네사는 십대 시절의 자신에 대해, 스트레인과의 일에 대해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 살고 있다. 그 일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여전히 그 시간에 묶여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자신은 피해자가 아니라고, 그들의 관계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었다고, 그는 나를 사랑했다고 믿고 싶은 버네사의 마음이 이해할 것 같으면서도 안타깝게 느껴졌다.
"왜냐하면, 만약 이게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면, 그럼 뭐죠?"
나는 루비의 투명한 눈을, 활짝 열린 공감의 표정을 본다.
"이게 내 삶이에요." 내가 말한다. "이게 내 삶의 전부였어요."
어린 소녀와 성인 남성의 성적인 관계는 <롤리타>같은 문학 작품 속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현실에서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실재하는 돌로레스 헤이즈들과 버네사 와이들이 더 이상 상처받고, 고통받지 않기를.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도 긴 여운을 남겨주는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