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 배우 중 한 명이 말했다.
애그니스는 멀리서 들리는 종소리처럼 또렷한 울림으로 그 단어를 들었다. 그리고 또 나온다. 햄릿.
애그니스는 피맛이 느껴질 때까지 입술을 깨문다. 두 손을 꽉 쥔다. 사람들이 그 이름을 말하고 있다. 무대 위의 남자들이 게임판의 말처럼 주고받는다.
햄릿, 햄릿, 햄릿. 그 유령, 죽은 남자, 사라진 형체를 가리키는 말인 듯하다.
애그니스가 알지도 못하고 앞으로도 알 일이 없는 사람들의 입에서 그 이름을 듣다니. 죽은 늙은 왕의 이름으로 입에 오르내리다니. 애그니스는 납득이 안 된다. 남편이 왜 이런 짓을 한 걸까? 왜 그 이름이 자기에게 아무 의미도 없는 척, 그냥 단순한 글자의 조합인 척하는 건가? 어떻게 그 이름을 훔쳐 거기 담긴 것을 벗겨내고 뜯어내고 그 이름이 지녔던 삶을 저버릴 수 있는가? 어떻게 펜을 들어 그 이름을 종이에 써서 아들과의 연관을 끊어버릴 수 있는가? 말이 안 된다. 이 사실이 가슴을 찌르고, 뱃속을 도려내고, 애그니스를 자기 자신으로부터, 그로부터, 그들이 공유했던 모든 것으로부터, 그들의 존재 자체로부터 끊어내는 듯하다. 애그니스는 다리에서 보았던 불쌍한 머리, 이를 드러내고 목이 잘려 공포로 얼어붙은 얼굴을 떠올리며 자기가 그중 하나가 된 것 같다고 생각한다. 떨리는 강물, 몸 없이 흔들리는 머리, 소리 없고 소용없는 후회를 느낀다. (전자책 기준 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