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그니스 혼자만 마법사의 주문에 걸려들지 않은 것 같다. 마법이 애그니스는 사로잡지 못했다. 애그니스는 조롱하고 야유하고 싶은 심정이다. 남편이 이 말들을, 대사를 썼다지만 그게 우리의 아이와 무슨 상관이 있나? 무대에 있는 사람들에게 외치고 싶다. 당신, 그리고 당신, 당신들은 아무것도 아니야,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그 아이의 존재에 비하면, 감히 그 아이 이름을 입에 올리지 마. (전자책 기준 96%)
애그니스는 유령에게 시선을 고정한다. 체구, 팔동작, 위쪽을 향한 손, 손가락이 구부러진 모양새, 어깨를 돌리는 자세. 유령이 면갑을 올렸을 때 애그니스는 알아보고 놀라는 게 아니라 이미 아는 것을 공허하게 확인할 뿐이다. 얼굴을 귀신처럼 허옇게 칠하고 수염은 잿빛으로 바꾸고 전투에 나가려는 사람처럼 갑옷과 투구를 갖추었지만 애그니스는 한순간도 속지 않는다. 그 의상, 그 변장 아래에 누가 있는지 명확히 안다. 애그니스는 생각한다. 좋아, 그래. 거기 있구나. 무얼 하려는 거야? (전자책 기준 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