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그니스의 속은 텅 비었다. 겉은 불분명하고 실체가 없다. 애그니스는 나뭇잎에 부딪힌 빗방울처럼 흩어지고 분해될 것 같다. 이곳을 떠날 수가 없다. 이 문을 지나갈 수 가 없다. 여기에 아이를 두고 갈 수는 없다.
애그니스는 나무로 된 문기둥을 두 손으로 붙든다. 모든 것이 산산이 흩어지는 가운데 이 기둥을 붙잡고 있는 게 최선이고 유일한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딸들은 이쪽에 아들은 저쪽에 있는 상태로 머무를 수만 있다면, 흩어지지 않게 다 붙들 수도 있을 것 같다.
남편, 남동생, 두 딸이 매달리고서야 애그니스의 손이 기둥을 놓는다.
애그니스는 산산이 부서지고 무너지고 흩어진 사람이다. 요즘에는 발아래를 내려다 보았는데 한구석에 발 하나, 땅 위에 팔 하나, 마룻바닥에 손 하나가 떨어져 있어도 놀라지 않을 것 같다. 딸들도 마찬가지다. 수재나의 얼굴은 굳어 있고 눈썹은 분노 같은 것으로 짓눌렸다. 주디스는 계속 소리 없이 운다. 흘러내리는 눈물이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 같다.
햄닛이 이들을 한데 묶어주는 핀이었다는 걸 어떻게 알았겠는가? 그 아이 없이는 바닥에 떨어져 깨진 컵처럼 모두 조각조각으로 흩어져버리리라는 걸? (전자책 기준 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