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다 살 수는 없다. 햄닛도 알고 주디스도 안다. 두 사람 모두에게 돌아갈 만큼 삶이, 공기가, 피가 충분하지 않다. 처음부터 그랬을지도 모른다. 만약 둘 중 하나가 산다면, 주디스여야 한다. 햄닛은 자기 의지로 그렇게 정했다. 두 손으로 이불을 꼭 쥔다. 그가, 햄닛이 명한다. 그렇게 될 것이다. (전자책 기준 56%)
이 편지에는 곰곰이 생각해볼 것이 너무 많다. 애그니스는 편지 내용을 속속들이 알기까지 며칠이 걸렸다. 그 단어들을 머릿속에서 떠올리고 또 떠올려보고 편지에서 손가락으로 짚어보았고 이제 통째로 외웠다. 보석과 구슬. 궁정 장면. 소년 배우들의 손. 부드러운 여성용 장갑. 이런 것을 이렇게 길게 세세히 쓴 방식에 무언가가 있다. 배우들이 쓸 장갑 얘기를 하는 긴 편지에서 애그니스는 무언가를 느낀다. 그게 무엇인지는 아직 모른다. 그에게 어떤 변화가, 변동이나 전환이 있다. 그가 장갑 계약 따위의 사소한 얘기를 이렇게 길게 쓴 적은 없다. 이게 다른 계약과 다르지 않은 보통 계약이라면, 애그니스는 왜, 아주 멀리서 나는 바스락 소리를 듣는 작은 동물이 된 듯한 기분이 들까? (전자책 기준 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