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상 내 이야기를 다시 쓰려니 참 낯간지러웠다. 어느 순간부터 나만을 위한 글은 아예 안 쓰다버릇했다. 타인에게 보일 글만 쓰다 보니 표현을 절제하고 정제하는 능력만 늘었다. 자기 생각 을 표현하는 일에 주저하게 되어 필설로 하기보다 참기를 택했다. 그렇게 눈치를 살피기 시작한 내 문장엔 자의식이 부족했다. 머릿속 생각을 끄집어내기보다 이미 나온 사실 관계에 의존했다. 한 달 정도는 공벌레처럼 웅크린 내 자의식을 펴느라 애먹어야 했다. pp.213
비하의 당사자인 내가 화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놓고 말하지만 않을 뿐, 이미 많은 이들이 이러한 행동과 인식에 동조해왔다. 이런 일에 분노만 해선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사태에서 일어난 분노의 본질, 평등을 향한 갈망 아닌가. 우리는 언제든지 경쟁의 절벽에서 떨어질 수 있는 삶을 산다. 누군가를 떨어뜨리는 삶이 아닌, 손 잡고 나아가는 세상을 모두가 바랄 때 비로소 세상은 바뀐다. pp.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