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생활은 그럭저럭 잘 보내고 있었다. 다만 하루하루 회사생활을 끝마치고 귀가하면 할일이 없었다. 책상 하나 없이 텅 빈 방에 누워 종일 천장만 바라보곤 했다. 특히나 첫 주엔 감정이란 믹서에 우울함을 한 통 다 털어 넣고 마셔버린 듯 괴로웠다. 괴로움이 목 끝까지 차오를 땐 죽음을 결심했던 순간과 초원씨와의 약속을 떠올렸다. 그리고 되뇌었다. 이 몸뚱이는 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며, 약속을 지킬 줄 알아야 비로소 어른에 한 발 더 가까워진다고. 그때부터 현실의 지면에 나를 단단히 고정하기 위해 쉼없이 내면을 망치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