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이 긍정적으로 풀려갔다. 변치 않는 건 오로지 월급 뿐. 7000원이란 시급은 내 비루한 상황을 타개하기에 턱없 이 부족했다. 아무리 자존감을 키우려 해도 금방 찌질이로 돌아왔다. 말버릇도 점차 '어차피' '그래봐야' 같은 체념의 언어에 잠식당하고 있었다. pp.172
양산 생활은 뜬금없이 끝났다. 어머니가 유방암 판정을 받았다. 빚보다 더한 악재에 내 첫 반응은 좌절도 슬픔도 아닌 냉소. 가난도 모자라 이젠 가족의 우환이라니, 이 모든 상황이 <인간극장> 같아 화낼 여력도 없었다. 가까스로 생명줄만 붙여놨던 정신의 바이털사인이 톡 끊어지는 느낌 이었다. pp.195
그때 비로소 알게 됐다. 눈물 이란 꼭 슬플 때만 나지 않음을, 눈 아래 맺힌 작고 뜨거운 액체 속엔 온갖 복잡한 감정이 조밀하게 뭉쳐 있음을. 비로소 삶의 감각이 돌아오자 가장 먼저 반응한 쪽은 부끄럽게도 배였다. 지난 열흘간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살았다. 편의점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퍼먹은 다음, 회복실에서 죽음의 산골짜기를 넘어온 심여사와 재회했다. pp.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