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살 이후 단 한 번도 가난에서 벗어난 적 없던 삶. 줄곧 공장과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몸에 새긴 주제 파악. 혼자 건사하기도 벅차서 평범함조차 사치라며 걷어내버린 후, 평생 바닥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 절망하고 체념한 이의 한 맺힘. 초원씨가 평생 모르고 살아갈 패배자의 세계를 몇 마디에 담아 내보내기로 했다. pp.166
그래, 이렇게 부풀었던 감정은 또 현실에 꺾이고 깎여나가다 마지막엔 형태도 모를 정도로 엉망이 되어 있겠지. 알고 있다. 그래도 지금 이 순간 정도는 잠깐 즐겨도 되지 않을까. 미래의 내가 겪을 아픔 정도는 좀 떠넘겨놔도 되지 않을까. pp.168
감정의 부채를 떠안기로 마음먹은 순간, 모든 잡념이 각오의 파도에 깔끔하게 씻겼다. 그날 월요일은 오래간만에 푹 잠들고 개운하게 일어났다. pp.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