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시 소영과 어울려 다녔다. 소영은 점점 날카로워졌다. 작은 배신의 낌새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러면서도 의리를 과시했다. 소영은 소소한 모든 싸움에 끼어들었고, 기거이 한 아이를 '우리의 적'으로 만들어냈고, 싸움의 상대가 된 아이를 필요 이상으로 짓밟았다. 싸움이 끝나고 나면 친구들에게 친절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미소를 좋아하는 아이는 없었다. 다툼을 해결해준 소영에게 고마워하는 아이도 없었다. 싸움이 없을 때에도 소영은 자주 친절한 미소를 지었다. 같이 핫도그를 먹다가 한 아이가 입가에 케첩을 묻히면 소영은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가방에서 휴지를 꺼냈다. 그 아이의 입가를 직접 닦아주었다. 케첩이 묻었던 아이는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곤란해했다. 그런 일이 반복되자 우리는 전염병에 걸린 것처럼, 서로에게 친절한 미소를 지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친절해질수록 서로에게 진절머리를 쳤다. 소영의 연기는 점점 더해갔지만, 정말로 연기를 잘하는 것은 아이들이었다. 그중에서도 나는 가장 최선을 다해 연기를 하는 아이였고, 가장 최선을 다해 소영에게 복종하는 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