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차릴 틈도 없이 상복으로 환북한 채 사흘 동안 병풍 앞과 식당을 오갔다. 그 시간 동안 마음속에서 천천히 아버지의 존재를 비워냈다. 일단 비워 내고 나자 이후 모든 다툼이 다 부질없게만 느껴졌다. pp.63
앞으로 대체 무슨 일 해서 먹고 살아야 하나? 내가 공장 일 말고 할 수 있는 일이 있긴 한가? 꾸역꾸역 얻어낸 전문대란 애매한 가방끈은 지긋지긋 한 현실에서 벗어나게 해줄 동아줄이 될 수 없었다. 불청객 같은 2월이 오고 마침내 졸업식, 타지로 취업 나간 사람들이 참석하지 않아 허전한 학교 안. 교수님께 졸업장을 받아들었을 땐 뿌듯함보다 불안함이 앞섰다. 기어이 대학 졸업장을 손에 쥐었지만 미래가 나아질 것 같지 않은 예감. pp.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