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솔직하게 대답했어야 했다. 가장 예쁜 풍경은, 일출 을 등진 네 모습이었다고. 그러나 스무 살 청춘에 맞이한 절묘한 고백 기회 이후 다음은 오지 않았다. 얄궂은 일상 이 돌아왔고 보름 후에 첫 월급이 나왔다. 170만원. 취업한 선배가 자랑했던 200만원, 담임이 비웃었던 그 200만원보 다도 훨씬 적은 액수 잠도 제대로 못 자가면서 68시간 꽉 채워 받아낸 그 금액은, 노동강도 생각하면 코웃음 나게 적었지만 내 삶을 뒤바꿔놓기엔 충분했다. pp.45
은주와의 대화 이후, 그제야 기본을 다 갖춘 삶 이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말 그대로 밥벌이해 먹고사는 데야 이 월급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그 이후는 어떻게 꾸려나갈 건가. pp.47
한참 동안 눈동자에 서로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담고만 있었다. 스무 살, 나는 너무 빨리, 너무 잘못 철이 들어서, 가난과 상처의 껍질 속에 불안과 소심을 감춘 채 친구면 족하다고, 연인이 되면 불행하기만 할 뿐이라고 자신을 속였다. 시작도 전에 포기해버린 내게 은주는 조용히 다가와 살포 시 안아주었다. pp.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