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총 이십 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 내 인생 절반을 함께했던 자그마한 세계가 낯설게 느껴지는 탓은, 절반 이상 변해버린 풍경 때문은 아니요, 절반 이상 커버린 내 모습 때문도 아니요. 그저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의 사이가 소원해진 탓이며 앞으로 더욱 멀어지기만 할 관계이기 때문일 터. 시냇물이 눅눅한 이끼를 쓰다듬으며 졸졸 흘러내리는 회원천 다리 위에서 해를 맞이했다. 내 맘대로 추억과 이별한 아침. 고등학생과 대학생의 경계선에 있던 그때까지만 해도 이십대의 삶이 그저 무미건조하리라고만 생각했건만, 그마저 전망이 아니라 낙관이었음을 석 달 후에 깨닫게 되었다. pp.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