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거래 사이트에 글을 올린 직후부터 줄곧 속이 쓰 라렸다. 내게 게임 속 캐릭터와 아이템은 그저 즐기고 남 은 찌꺼기가 아니었다. 자긍심이자 자부심이며, 노력의 흔 적이었고 계급의 증명이었다. 그 모든 걸 쌓아올리기 위해 오랫동안 낮과 밤을 바꾸어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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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마을에 앉아 다가오던 새벽이 놀라 도망칠 정도로 떨었던 수다. 마음껏 늘어놓았던 생각, 털어놓았던 진심, 숨겨놓았던 질투. 그 모든 감정을 함께 나누었던 이들은 진정한 친구가 아니란 말인가? 나의 인연은 학교 안보다 모니터 안에 더 많았고, 어른이 되면 그들 하나하나를 현실에서 만날 생각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스무 살로 올라가는 계단 끝에 도사린 것은 만남이 아니라 이별이었다. pp.21
비로소 게임과 내 접점이 완벽하게 끊어졌다. 그 대가로 통장에 찍힌 150만원을 보자 '허무' 두 글자론 다 설명 할 수 없는 감정이 가슴께를 꾹 짓눌렀다. 컴퓨터 그래픽 속에 깃들었던 노력이, 인연이, 추억이, 숫자 속에 삼켜졌다. 서글프지만 현실을 받아들여야 할 때의 안타까움. 그뒤에 몰아닥치는 초라함과 굴욕감, 유쾌함과 정반대편에 존재하는 감정의 파도 속에서 한참을 헤엄쳤다. pp.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