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내전에 대해 잘 몰랐다. 몰라서 더 알고 싶었고 부헨발트 나치 수용소에서의 수감 경험을 가진 작가는 어떤 이야기를 할지 궁금했다. 스페인의 유력 정치인 집안에서 태어나 부유한 환경에서 풍족한 교육을 받으며 자랐던 호르헤 셈프룬은 휴가 중에 일어난 스페인 내전으로 집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졸지에 망명 생활을 하게 되었지만, 프랑스의 앙리 4세 고등학교에서 그의 삶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줄 문학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책의 제목 『잘 거거라, 찬란한 빛이여』도 프랑스어에 푹 빠지게 한 보들레르의 시 「가을의 노래」의 한 구절이다. ‘잘 거거라, 너무 짧은 우리 여름의 찬란한 빛이여!’ 마드리드가 함락된 날, 서툰 프랑스어로 빵을 주문하는 어른 호르헤 셈프룬에게 “패주중인 붉은 스페인 사람”이라는 멸시적인 표현을 한 빵집 여주인은 일종의 자극제가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오히려 더 프랑스어를 더 정복하고 싶은 프랑스어로 글을 쓰고 싶은...
1931년 스페인의 공화파가 선거에서 대승을 거두지만 1936년 7월 17일,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스페인 내전이 시작되자 프랑스로 망명한다. 이 책은 바로 이 시기, 프랑스 파리에서의 망명 생활을 시작한 몇 개월 동안을 회상해서 쓴 자전적 이야기다. 그는 시간의 흐름을 파격적으로 깨고 종횡무진 한다. 이러한 그의 서술 진행방식에 대해 번역가는 ‘기억을 자신의 등대로 삼은 셈프룬에게는 이 정리가 불필요하다’고 말했지만, 그러한 이유로 좀처럼 이야기에 집중하기 힘든 건 사실이다. 마치 불친절한 가이드를 따라 낯선 길을 한참 동안 헤매는 기분이다. 웬만해선 중도에 책을 덮지 않는 나지만 독파가 아니었다면 완독하기 힘들었을 정도이다.
호르헤 셈프룬은 『팔뤼드』는 프랑스어 외에 다른 언어로 써낼 수 없다는 증거로 폴리오판 114페이지를 보여주지만, 이미 한글로 번역된 『팔뤼드』 114페이지를 읽는 우리는 그 증거의 신빙성에 대해서 논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췌된 그 부분의 풍경 묘사는 우리글로 읽어도 아름답고 섬세하다. 아마도 호르헤 셈프룬이 한국어를 알았다면 생각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우리 언어야말로 섬세하고 독창적 표현이 무궁무진한 언어이니까!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숨을 쉬는 것처럼 글을 써야만 한다는 필연성’을 느꼈음에도, 부헨발트 수용소에서 돌아온 그는 아무것도 쓸 수 없었다.」 p366
글을 쓰려면 수용소에서 있었던 고통스러운 죽음의 기억을 떠올려야 했으나 글을 쓰지 않는 삶은 그에게 또 다른 고통이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