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은 늘 새로워지지만 싸움은 구태의연할 것이다. 그게 이 나라가 가르치는 평화의 방식이었다.
-335쪽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책장을 덮으며 마음이 많이 무거웠다. 소설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건 하나가 최근의 참사를 연상시켰고, 소설 안에서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은 지금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결국 이 소설은 국자의 젊은 시절, 즉 과거의 배경을 빌려와 현재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지금 당장의 현실을.
그럼에도 희망을 이야기해야 한다면. 인류와 사회는 앞으로 나아간다는 최소한의 믿음조차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그럼에도'라고 다시 한번 일어서야 한다면.
아직은 희망이 필요했다. 희망과 절망은 한 장의 종이였다. 먼저 읽는 쪽이 앞면이고, 나중에 읽는 쪽이 뒷면이었다. 단면만 읽고 구겨서 버리는 건 일시적인 도피였다. 절망과 희망 중 어느 쪽을 먼저 읽어야 할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언젠가는 남은 면도 읽어야 했다. 묵묵히 다 읽어낸 후 받아들여야만 남은 시간을 살아갈 수 있었다.
-241쪽
뉴스를 볼 때마다, 반복되는 사건 사고 앞에서 무력감과 절망을 느낀다. 이제까지 읽어 내려간 종이의 앞면에는 모두 그런 이야기들뿐이었다. 그럼에도 뒷면을 넘겨볼 수 있는 힘만은 놓치지 않기를. 그것은 맹목적인 낙관론도 구원을 바라는 공허한 열망도 아닌, 그저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는 최소한의 힘. 함께하겠다는 의지.
나에게는 초능력도 없고 삶의 지혜랄 것도 없지만 그 정도만큼은 내 힘으로 해내고 싶다. 묵묵히 다 읽어내기. 남은 시간을 충실히 살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