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슨은 의뭉스러운 웃음을 떠올렸다. "분야 운운할 때야 무관하겠지. 하지만 그건 이 정리에 의해 행동을 규정받는 물리적 계의 클래스가 터무니없을 정도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야. 와일스의 증명을 입증하려고 하는 수학자들의 뇌라는 형태로 말이야. 생각해 보라고, 설령 수학이 이 우주의 어떤 물체와도 관련이 없을 정도로 '순수'하더 라도, 일단 네가 어떤 정리의 증명에 착수한 순간부터 그 수학과 너라는 실제 인물 사이에는 관계성이 생겨나게 돼. 그 정리를 입증하기 위해 넌 모종의 물리적 과정을 선택해야 한다는 뜻이야. 그게 컴퓨터든, 펜하고 종이든, 아니면 그냥 눈을 감고 뇌 속의 신경 전달물질을 뒤섞는 일이든 간에 말이야. 물리적 사건에 좌우되지 않는 수학 증명 따위는 존재하지 않아. 그 사건이 네 뇌 안에서 일어났든 밖에서 일어났든 간에, 그 증명이 덜 현실적이 되거나 하는 경우는 없다고." (전자책 기준 61%)
나는 한 무리의 쿼크 따위가 페르마의 정리가 아우르는 무한하게 많은 경우의 수를 도대체 무슨 수로 검토할 수 있었겠느냐고 반박하려다가, 퍼뜩 입을 다물었다. 내 반론은 옳았지만, 와일스에게 그것은 장애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페르마가 남긴 모호한 가설을, 모든 수에 관한 단순한 일반 법칙들을 포함한 정수론의 공리들로 연결해 준 것은, 유한하게 이어지는 논리적 증명 절차가 아니었던가. 종이에 쓴 연필 글씨든, 뇌내의 신경전달물질이든 간에, 수학자가 유한한 수의 물리적 물체를 유한한 시간 동안 조작함 으로써 그런 논리적 절차를 테스트할 수 있었다면, 모든 종류의 물리적 계들 역시 이론상으로는 이 증명의 구조를 모방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자기들이 무엇을 '증명'하고 있는지를 의식하는지 의식 못 하는지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전자책 기준 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