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의 정신 내부를 돌아다닌다는 건 미로 안을 빙빙 돌며 헤매는 행위나 다름없다네. 진화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이란 결국 그런 거야. 비참하고, 혼란스럽기만 한 감옥, 코카인이나 헤로인이나 알코올 같은 조잡한 약물은 결국 몇몇 막다른 길로 이어지는 지름길을 만든 것에 불과해. 아니면 LSD처럼 미로의 벽을 거울로 코팅했거나. 백기사가 한 일이라고는 같은 효과를 다른 방식으로 포장한 것에 불과하고.
하지만 회색 기사는 미로 전체의 모양을 마음대로 다시 바꿀 수 있게 한다네. 우리를 쪼그라든 감정의 레퍼토리 따위에 감금하는 대신, 완전무결한 자율권을 부여한다고나 할까. 자기가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제어할 수 있도록 해주는 거지. (전자책 기준 58%)
물론 콘래드가 한 말은 옳았네. 단어 하나하나가 부정할 길이 없는 진실이지. 그 글이 쓰였을 당시에는 말이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어. 왜냐하면 지금은 인간의 본성 전체가 바람에 날리는 거보다도 못한 것이 됐기 때문이야. 암흑의 심장에 자리 잡은 그 '공포'는 바람에 날리는 거보다 못해. '영구불변의 진리' 조차도, 소포클레스에서 셰익스피어에 이르는 위대한 작가들이 보여준 슬프고도 아름다운 통찰들조차도, 결국은 바람에 날리는 거보다도 못한 거야. (전자책 기준 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