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갑자기 무력해진 것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나는 언제나 무력했기 때문이다. '나의' 육체나 외부 세계에 영향을 끼치려고 하는 나의 의지는 언제나 허무 속으로 굴러떨어졌고, 내가 느낀 욕구와 나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행동이 지금까지 줄곧 일치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교사>가 끊임없이 나를 조작하고, '수정'해 왔기 때문이었다. (전자책 기준 48%)
내가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 어떤 관점에서 보자면 과거 28년 동안 나는 1마이크로초마다 계속 말살당하지 않았던가.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내가 존재하기 시작한 것은 <교사>가 고장 난 뒤의 7주에 불과하며, 내가 독립된 자아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은 헛소리에 불과하다. 1주 뒤면 이런 비정상적인 현상은, 악몽은, 끝날 것이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영원을 상속할 수 있는데, 비참하기만 했던 지난 두 달 동안의 경험을 상실한다고 해서 뭐가 그리 아쉽단 말인가? 영원을 상속하는 것은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의 모든 것을 정의하는 것은 바로 그 비참하기만 했던 두 달이므로. (전자책 기준 48%)
여기서 이성적인 분석을 늘어놓아 보았자 아무 의미도 없지만, 결국은 살고 싶다는 나의 필사적인 의지에 의거해서 행동하는 수밖에 없다. 나는 내가 비정상적이라는 느낌을 받지도 않았고, 처분해야 마땅한 오류라고 느끼지도 않는다. 내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희망은 도대체 어디서 찾으면 될까? 나는 유기뇌를 따라 행동해야 한다. 강제적으로 그러는 대신에 자발적으로 말이다. 그들이 나에게 강요할 존재와 겉으로는 동일한 것처럼 보일 수 있도록, 선택하는 것이다. (전자책 기준 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