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평화란 불가능했다. 반동이 사라져도 금세 그들을 대체할 또다른 적이 생길 테니까. 적은 늘 새로워지지만 싸움은 구태의연할 것이다. 그게 이 나라가 가르치는 평화의 방식이었다. 모두가 은연중에 알고 있지만, 애써 알려고 하지 않는 사실이기도 했다. 알아도 어떻게 바꿔야 할지 모르니까. 사람들은 불안정한 변화보다 확실한 고착이 낫다고 믿었다. 그렇게 믿도록 길들여졌다. p.335
선천적인 능력으로 사람을 나누고 길들이는 나라. 가정도 우정도 사랑도 국민들을 기만하는 국가의 권력 앞에 힘이 없이 쓰러진다. 누구도 믿을 수 없이 혐오와 편가르기가 난무한다. 그것에 힘을 얻는 건 국가의 지도자일 뿐. 국민들도 영웅으로 떠받들여지는 이들도 아니다. 영웅 VS 반동. 그들도 능력과 상관없이 위기에 처하고 몸이 아프면 응당 구조를 받고 치료를 받아야 할 인권을 가진 사람이다. 하지만 반동이라 찍히면 누구나 누려야 하고,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하고 만다. 그런 상황을 어렸을 때부터 보아온 이국자. 복합적인 능력을 갖고 있고, 음식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국자. 그녀가 차려놓은 진수성찬을 보고 있자니 절로 허기가 진다. 엄마가 정성스레 차려 놓은 밥상을 앞에 두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삶이 절망적이라고 느껴지는 순간,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배부르게 먹고 한잠 자고 일어났을 때의 그 나른한 느낌.
부모님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은 딸과 그 독립을 막으려는 귀여운 부모의 이야기에서 베일에 가려져있던 부모님의 과거 그리고 분열을 조장했던 유치하기 그지없는 국가. 그 이야기를 따라가보니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과 뭐가 그리 다른가 싶다. 모두 내 자식만큼은 나 만큼은 영웅이 되고 싶은 마음, 나와 다른이를 철저히 배제하고 혐오하는 세상. 그 속에서 어깨 한 번 펴보지 못하고 사라지는 소수자들.. 그들의 아픔이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사고 현장에서 자신의 목숨을 내 놓으며 일반인들을 구하려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모습에서는 얼마 전 일어났던 이태원참사의 모습이 겹쳤다. 소방대원 일반인 할 것 없이 한 명의 목숨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애쓰던 분들. 그것과 대조적으로 서로의 탓을 하고 덮기 바쁜 정부. 왜 이렇게 매번 되풀이 되는 것일까.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다.
국자와 수일의 러브스토리 앞에서는 나도 모르게 설렘과 웃음이 비실비실 새어나왔다. 어두운 옷만 입던 수일에게 밝은 옷만 입으랬다고 평생 그 말을 듣는 그 남자의 사랑법이라니.. 이 사랑 너무 애틋하다.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가 번갈아가면서 진행되니 조금은 어수선하게 읽힐지 모르지만 읽다보면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누구도 다치지 않고 살리고 싶어하는 한 여자의 진심. 그것만 느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