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암울한 기분을 박차고 나와 내가 원하는 감정을 느낄 방법은 전무했다. 나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자유밖에는 없었다. 내가 느끼는 이 비애를 정당화할 수 있는 그럴듯한 이유를 찾아내서 내가 인위적으로 꾸며낸 불행한 상황에 대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에 불과하다고 나를 속이든가, 아니면 그런 감정을 외부에서 강요받은 이질적인 것으로 치부하고 육체적으로 마비돼 아무 쓸모도 없어진 무력한 사람처럼 이 감정의 껍질 안에 갇혀 있다고 상상하든가. (전자책 기준 17%)
그러나 이 의뇌를 계속 쓸 경우 나는 어떤 운명을 맞게 될까? 보편적인 행복감, 보편 적인 불안감... 전 인류가 내 감정을 반반씩 규정한단 말인가? 어둠 속에서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그나마 내가 매달리고 의지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내부에 일종의 씨앗이, 기회만 주어진다면 다시 살아 있는 인간으로 자라날 가능성이 있는 나의 작은 버전이 들어 있을 가능성 때문이 아니었던가? 그렇지만 그런 희망이 없다는 사실은 지금 증명 되지 않았나? 나는 자아의 재료에 해당하는 것들을 제공받았고, 이것들 모두를 시험해 보고, 이것들 모두를 마음에 들어했지만, 그 어떤 것도 나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는 못 했다. 지난 열흘 동안 내가 느낀 즐거움은 무의미했다. 나는 타인이라는 태양의 빛을 쬐며 바람에 날리는 거에 불과했다. (전자책 기준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