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붙고 군데군데 곰팡이가 핀 바게트 빵을 흉기처럼 들고 서서 "움직이지 마. 손들어."를 외치는 작은 체구의 남자아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던 커리어로 결국 은퇴 후에 온라인 야구 게임으로 대리 만족을 위해 자신과 같은 캐릭터를 여든일곱번째 만들어내고 있는 전직 야구 선수. 이 작품 속 이야기들에는 분명 현실 속에 있는데 각자만의 판타지를 넘나 들고 있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비현실보다 비현실적인 현실을, 농담보다 농담 같은 진실을 펼쳐 보인다'는 평가처럼 뭔가 종잡을 수 없는, 예측 불가능한 이야기가 이상하게 시선을 사로잡아 페이지 넘기는 속도를 빨라지게 하는 것이 오한기 작가님만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네 손에 들린 건 총이 아니라 빵이야. 배는 채울 수 있지만 아무도 죽이지 못한다고." 이렇게 때로는 진실이 너무도 잔인한 것이 현실이지만, 작품 속 인물들은 모든 게 어그러져 있는 무질서 속에서 나름의 균형을 잡아가면서 각자의 일상을 보내고 있다.
이런 저런 의미를 찾아 보고 싶은 작품이지만, 일단 재미있다. 가독성이 아주 뛰어나고, 장난스러움과 위트와 무질서와 정돈됨이 이상하게 공존하고 있는 오한기의 세계에서 헤어나오고 싶지 않았을 만큼. 그의 다음 작품이 벌써부터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