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을 소설로 만드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경험을 논문으로 만든다는 것 역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애초에 소설과 논문은 같은 영역에 있지 않지만 그래도 그 둘이 같은 차원(글쓰기)이기는 하다면 경험은 아예 다른 차원(실재)의 일이니까. 삼각형이나 사각형이 서로의 같고 다른 점을 아무리 비교 대조한다 해도 둘은 결코 정육면체를 이해할 수 없다. pp.187
하지만 밤이 되면 논문에 옮겨지지 못한 것들, 잔여물처럼, 아니 무너진 다리 상판처럼 내면의 강물 위를 떠다니는 무엇들이 눈에 들어왔고 나는 잠들지 못한 채 어떻게 하면 이 남은 것들로 소설을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곤 했다. 당연히 논문은 논문대로, 소설은 소설대로 풀리지 않았다. 잘못된 짝을 만난 이인삼각을 억지로 이어가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내가 건너가야 할 다리는 저 앞에서 이미 끊어져 있다... pp.1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