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까지 들었을 때 나는 그들이 누군지 알아차렸다. 그들은 모두 K의 소설에 나오는 이들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미발표 소설 들에 나오는 인물들-실수로 아들을 죽인 여자, 이웃과 치정 관계에 빠진 여자. 앞의 여자와 관계없이 오쟁이 진 남자. 그리고 갑작스러운 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여자-그들은 그 꼴을 당하고도끝내 책이 되지 못했다. pp.161
K는 언젠가 이야기한 적이 있다. 아무리 고쳐써도 완성에 이르지 못하는 작품들이 있다고. 그 작품들은 결정적인 뭔가를 갖추지 못하고 있는데, 바로 여백이다. 여백이 없다면 좋은 이야기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이야기를 쓰기 시작할 땐 그것을 분별할 수 없다. 다 쓰고 나서야 바닥에 코를 찧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pp.161
"몰라요. 사실 아무도 모르니까 그렇게 부르는 거예요. 어쨌든 분명한 건 그 이야기들에 뭔가 오류가 있고, 아무리 노력해도 그것을 바로잡을 수 없다는 거예요. 처음부터 그렇게 내정되어 있 는 거죠." pp.1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