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은 섣불리 타인을 판단하는 대신 '가능하면 저 사람들처럼 생각하자', '저들 입장에서 느끼고 즐기며 저 사람들이 되어보자 다짐했다. 그러곤 화장실 거울 앞에서 혼자 그들의 말투와 동작을 따라 하다 관둔 뒤 싱겁게 웃었다. 세상에 주류다운 몸짓과 표정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닌데 제 모습이 민망해서였다. 다만 이연은 웃고 떠드는 와중에도 그들에게서 알 수 없는 힘을 느꼈다. 상대에게 직접 가하는 힘이라기보다 스스로를 향한 통제력이라 할까, 오랜 시간 '판단'과 '선택'이 몸에 밴 이들이 뿜어내는 단단하고 날렵한 기운이었다. pp.105-106
이연은 자신이 대상을 편견 없이 대하는 태도에 작은 만족을 느꼈다. 타고난 성정이라기보다 수양의 결과였다. '어렸을 땐 정말 타인을 시시콜콜 판정했는데...' 지난 세월, 시간의 물살에 깎이고 깨지며 둥글어 진 마음이 있었다. 실제로 이십여 년간 이연이 여러 인물에게 자신의 몸을 빌려주며 깨달은 사실은 단순했다. 그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자리에 서보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라는 거였다. 그리고 그로부터 오해와 갈등이, 드라마가 생겼다. pp.106
적어도 지금 이연은 인간을 더 연민하게 됐으니까. 이연은 그리스신화 속 영웅이나 현대의 범인 못지않게 '그 나머지 사람들을 애정하게 되었다. 자신을 이기지 못하는 이들을, 잘못된 선택을 하는 자들을 변명하고 나약한 이 들을,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이들을 깊이 응시하게 되었다. 우선 이연부터가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이제 이연은 착한 사람보 다 성숙한 사람에게 더 끌렸다. 그리고 자신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pp.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