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얼굴을 성상 앞 바닥에 대고 양팔을 십자가 모양으로 벌린 채 길게 엎드려서 소리 내어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못박힌 듯 엎드린 남자의 고통을 지켜보고 있자니, 나의 고통은 진짜가 아닌 것 같았다. pp.51/76 (전자책 기준)
환각이 시작됐고, 엎드려 있는 배 밑에 돌처럼 견고한, 십계명이 적힌 돌판처럼 견고한 말들이 깔려 있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그 글자들은 포타주에 들어간 '알파벳' 모양 파스타처럼 춤추며 서로 만나서 단어를 이루었다가는 해체되고 있었다. 반드시 이 단어들을 붙잡아야만 했다. 놓여나기 위해서 내게 필요한 것들은 바로 이 말들이 었고, 다른 말들이 아니었다. 그것들이 내게서 빠져나갈까봐 두려웠다. 그것들을 종이에 적어놓지 않는 한 나는 광기에서 헤어나지 못하리라. pp.56/76 (전자책 기준)
글쓰기는 더이상 내 현실이 아닌 것을, 즉 길거리에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나를 엄습하던 감각이다가, 제한되고 종결된 시간 동안 '집착'이 되었던 것을 보전하는 방식이었다. pp.58/76 (전자책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