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소 아직은 스물두 살이던 그녀가 '카타무 호 갸'라고 말하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 자신은 비관주의자이지만 그럼에도 어쩔 수 없다면 낙관주의자가 되자던 그녀가 이제는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분명해졌던 것이다. 자르갈은 그의 울음만은 이해할 수 있었고, 그래서 옆으로 누운 그의 어깨를 톡톡 쳤다. pp.126
정미는 새벽별처럼 짧은 시간 동안 지구에서 살다가 마치 원래 없었던 사람인 것처럼 사라졌다. 분명 서로의 육체에 가닿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시절이 두 사람에게도 있었건만, 그리고 그때는 거기 정미가 있다는 사실을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었지만, 이제는 모든 게 의심스러워졌다. 지구상에 존재했던 다른 모든 생명들에게 그랬듯 그들의 인생에도 시간의 폭풍이 불어닥쳤고, 그렇게 그들은 겹겹이 쌓인 깊은 시간의 지층 속으로 파묻히고 있었다. pp.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