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정의 아들이 아홉살이 되던 해. 아이의 몸속에서 악성종양이 발견됐다. 그리고 은정을 둘러싼 세상은 빛을 잃었다. 어릴 때부터 몸이 허약하고 병치레가 심해 귀찮을 정도로 자신에게 엉겨붙었는데도 아이의 몸속에 그런 끔찍한 게 자라고 있다는 걸 까맣게 몰랐다는 것. 그 사실 떄문에 그녀는 말할 수 없는 죄책감을 가졌다. 더 미안한 것은 종양을 발견한 뒤에도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는 점이었다. 섣불리 희망을 가질 수도, 그렇다고 무기력하게 절망 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 속에서 일희일비하는 동안 검게 물든 삶은 느리고 더디게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