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을 읽은 후 연이어 <탐닉>을 읽었다. 이미 알려진 대로 이 작품은 <단순한 열정>의 일기 버전이다. 작가가 당시에 쓴 일기를 수정 없이 (이름만 이니셜로 바꾼 후) 그대로 출판한 것이다. 이런 일기가 문학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일기를 쓸 때도 (나중에 출판할 생각은 아니었겠지만) 작가적 역량이 발휘되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단순한 열정>도 그렇지만 <탐닉>은 더 개인적이고 은밀한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기에, 더군다나 사회적으로 논란이 될만한 부분들이 있기에 (아무리 자유분방한 프랑스라고 하더라도) 사람들마다 판단하는 기준이 다를 것 같다. 이에 대해서 반감을 갖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인정하는 사람도 있을 듯하다.
그러나 그러한 주관적인 판단과는 별개로, 이 작품은 어쨌거나 작품성을 인정받은 셈이다. 그것도 노벨문학상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물론 이 작품 단독으로서가 아니라 작가가 그동안 써온 작품들 전반에 대해서지만.
이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여전히 좀 멋쩍지만)에서는 단순함이 반복된다. 저자가 S를 기다리고, S의 전화를 기다리고 안달하다가 만나게 되면 관계를 갖고 헤어지고, 또 기다린다. 그러다가 S가 갑자기 떠나고 저자는 상실감과 절망감을 느끼지만 그것을 서서히 극복해간다.
<단순한 열정>만 읽었을 때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이 작품을 통해 어느 정도 설명이 된다. 하지만 이해가 된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그것이 작가의 방식이고 작가의 삶이었음을 인정하는 것 뿐.
그 둘의 관계가 사랑이 아니었다는 건 분명한 듯하다. S는 저자를 이용하는 듯했고, 저자도 그것을 알면서도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먼저 벗어난 건 S다. 그런데 저자의 집착을 보면 그걸 견딜 수 있는 남자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공교롭게도 이 다음이 읽으려고 한 작품이 <집착>인지라 거기에서는 또 어떤 내용이 나올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글쓰기, 문학에 대한 작가의 열정 또한 느껴졌다. 그는 여러차례에 걸쳐서 글쓰기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의 삶 자체와도 같은 글쓰기, 그에 대하 자부심. 그러한 것은 진심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헤어진 이후의 생각들은 더 문학적으로 느껴졌다. 더불어 그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된 이유도 어렴풋하게나마 알 것 같았다.
그래서 당분간 아니 에르노의 작품들을 계속 읽어보려고 한다. 그러면 이 작가에 대해서, 작품들에 대해서 좀 더 정당한 평가를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