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픔의 단어는 모두 먹는 단어다. 눈앞에 음식이 그려지고 입천장에 맛이 느껴진다. 배고픔의 단어들 혹은 먹는 단어들은 환상을 먹여 키운다. 말이 말을 먹으며 맛있어한다. 배는 부르지 않지만 적어도 음식 곁에 머문다. 만성적으로 굶는 사람들은 저마다 선호하는 단어가 있다. 드물게 쓰는 단어와 지속적으로 쓰는 단어가 있다. 각자 제일 맛있어하는 단어가 따로 있다. 카푸스타처럼 명아주 역시 먹는 단어에 들지 못한다. 먹는 단어는 실제로 먹는 것 혹은 먹어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배고픈 상태에서 맹목과 주시는 같은 말이다. 맹목적인 배고픔은 음식을 가장 잘 본다. 은밀한 배고픔과 공공연한 배고픔이 있듯, 소리가 없는 배고픔의 단어들과 소리가 큰 배고픔의 단어들이 있다. 배고픔의 단어들, 즉 먹는 단어들이 대화를 지배할 때도 우리는 혼자다. 저마다 자기 단어들을 먹는다. 함께 먹는 다른 사람들도 결국은 자기를 위해 먹는 것이다. 배고픔에서 타인이 차지하는 자리는 없다. 타인의 배고픔을 나눌 수는 없다. pp.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