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빨리 사라져간 사람들에 대한 시각적인 기억이 많을수록 두려움도 커졌다. 두려움은 시간이 흐를수록 커지다가 무심의 경지에 이른다. 그러지 않고서야 죽은 사람을 발견하자마자 어떻게 그리 민첩하게 행동할 수 있겠는가. 죽은 사람을 보면 팔다리가 굳기 전에, 다른 사람들이 가져가기 전에 서둘러 옷을 벗겨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오기 전에 그가 아껴둔 빵을 베개에서 꺼내야 한다. 그렇게 말끔히 정리하는 것이 우리가 애도하는 방식이다. 막사에 들것이 도착하면 수용소 간부들이 시체만 가져갈 수 있게 다른 것은 없어야 한다.
죽은 사람과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가 아니라면 전리품만 보인다. 시체를 그런 식으로 처리하는 것은 악의적인 행동이 아니다. 입장이 바뀐다면 죽은사람도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다. 그리고 누구든 기꺼이 받아 들였을 것이다. 수용소는 실용적인 세계다. 수치심과 두려움은 사치다. 흔들림 없이, 어설픈 만족감으로 시체를 처리한다. 남의 불행을 기뻐하는 감정과는 다르다. 죽은 사람 앞에서 부끄러움이 줄어들수록 삶에 더 악착같이 매달리게 되는 듯하다. 그만큼 착각은 더 심해진다. pp.167